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지만 기록과 역사를 마주한 사람들은 언제나 그 말을 되새긴다. "과거가 현재를 구할 수 있을까?" 참사와 폭력의 현장에서 피해자들과 연대자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기록을 모으고, 정리하고, 고민하면서 더욱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다.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함께 있는 사람들의 질문이 날아와 꽂힌다. "지금 이런거 할때일까?" 즉각적인 대응을 해야 할 현장에서 한 발 떨어진 기록을 다루고 이야기하는 나는 어떻게 하면 비겁하지 않을 수 있고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을까? 역사의 관점에서 바라보라는 누군가의 말이 감사하지만 현장에서 그 눈으로 그 인내심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함께 그렇게 나아가자고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한자문화권에서 '기록'은 사전적으로 기록물이기도 하지만 기록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기록행위는 사람이 물질에 새기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경험과 이해(정보)를 자신의 몸에 체화(또는 육화) 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몸에 새기는 작업과 결과로 다시 정보를 불러오는 과정을 '기억'이라고 한다. 사회적 기억은 개인들이 유사한 기억을 새기고 공명하여(정동) 만들어낸 '공유하는 기억'을 말한다. '공유하는 기억'은 새로운 '기억'과 기록을 만나 다듬어져 '문화'를 만들 초석이다. 기록을 고민하는 사람은 이 과정들을 모두 기록으로 생각하면서 '등록기록물'을 관리해야 하지 않을까.
기록은 의도의 반영과 별개로 규칙을 물질에 새기는 작업이다. 인간이 물질의 변화를 일으켜 생산하는 행위는 노동이다. 기록은 노동이다. 다른 영역의 노동과 같이 기록은 노동이다. 자연스러운 부산물로서 기록을 거부하는 건 이미 진부하고 오래된 논의다. 오히려 기록노동을 비생산노동, 돌봄 노동으로써 주변화, 대상화 시키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기록은 산출에 비해 자본이 많이 들어간다."는 말은 전문성을 깎아내리려는 자들이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장의 기록연구사들이 하는 말이기도 하다. 효율적인 기록방법 개발과 끊임없는 기술 학습, 현장과의 소통이 더욱 필요하다. AI의 발달로 기록노동을 더욱 우습게 여기는 상황을 두려워하는 지금, 기록을 노동으로 직시하고 어떻게 구조화 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기록물은 유일하다. 고유한 내용을 담고 있다. 사본이라 할지라도 물리적으로 별개의 위치에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유일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중복'과 '같은 기록'이라는 것인 인간의 가치 판단에 근거한 결과일 뿐 유일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기록물은 다른 기록물과의 관계를 통해 구조와 맥락을 갖는다. 관계속에서 기록물은 유일성(존재)와 의미(가치)를 보장 받는다. 이 관계는 '다름'을 확인하는 작업이고 덩어리(기록군)를 형성하는 기초다. 연구사가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기록군을 만들 때 이 존재가 다른 존재들과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고 전체가 갖는 맥락의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기록은 사람과 같이 유일성(존엄과 필멸 그리고 존재적 한계)에 기반한 정치적 존재이다.